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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새들의 예배 수다를 시작합니다!

세 마리 새들의 예배 수다를 시작합니다!

올포워십 | 입력 : 2026/07/01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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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롭게 시작하는 코너, 세 마리 새들의 예배 수다입니다.

 

 

  이 코너는 예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의 소중함 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고민과 현실까지 함께 나누는 시간입니다.

 

우리 안에는 늘 질문이 있습니다.

 

좋은 예배란 무엇일까?

예배자는 어떤 마음으로 서야 할까?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
?

 

이 질문들을 질문하는 참새가 솔직하게 꺼내고, 통찰하는 올빼미가 깊이 들여다보며, 균형잡는 비둘기가 서로의 입장과 경계를 차분히 정리해봅니다.

정답을 빨리 내리기보다, 함께 묻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더 정직한 예배자로 서기 위한 시간.

 

오늘 첫 번째 이야기는

 

문제 있는 교회에서 예배자는 어떻게 서야 할까?”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세 마리 새들의 예배 수다를 시작하겠습니다.

 

 

 

  

  

 

1- 문제 있는 교회에서 사역해야 한다면?

 

질문하는 참새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런저런 질문을 물고 날아온 질문하는 참새입니다. 오늘은 조금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 은 음악으로 섬기잖아요.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세습이나 재정 문제, 리더십 문제처럼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슈가 있는 교회에서 사역 요청이 온다면?”

그곳에 가는 게 맞을까, 거절하는 게 맞을까?”

혹시 이미 그 안에서 섬기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이 질문들을 가지고 세 마리 새가 함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통찰하는 올빼미 안녕하세요. 저는 통찰하는 올빼미입니다. 이 주제는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죠. 왜냐하면 교회 이야기는 늘 신앙의 문제이기 도 하고, 동시에 삶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누군가에게는 예배의 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자리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 뿌리내린 공동체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맞다, 틀리다를 너무 빨리 말하기보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고민해야 하 는지를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균형잡는 비둘기 안녕하세요. 저는 균형잡는 비둘기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판단보다 분별이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문제 있는 교회는 무조건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래도 그 안에 예배가 있고 성도들이 있으니 섬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 사이에 있죠. 오늘은 그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이슈 있는 교회에서 사역 요청이 온다면?

질문하는 참새 , 첫 번째 질문부터 던져볼게요. 요즘 교회 안팎으로 여러 이슈가 있잖아요. 세습 문제도 있고, 리더십 문제도 있고, 교회 문 화가 건강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곳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교회에서 와서 연주해 주세 요”, “찬양 인도해 주세요”, “후원 집회에 함께해 주세요”, “예배 사역을 맡아 주세요라고 요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게 참 어렵더라고요.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불편해요. “내가 거기 가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 안에도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 안 에도 상처받은 성도들이 있잖아.” 그러니까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통찰하는 올빼미 맞아요. 저는 여기서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게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모든 교회의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어떤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이 소문인지, 분위기인지, 실제로 드러난 문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는 만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거기 가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건 조심해야 합 니다. 반대로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고요.

둘째는 개인으로서의 결정과 단체로서의 결정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개인이 어떤 교회에 가는 것과, 내가 속한 단체가 공식적으로 그 교회와 함께하는 것은 무 게가 다를 수 있어요. 개인적 판단과 공적 판단이 늘 같지는 않습니다.

 

균형잡는 비둘기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어요. 그 사람이 어떤 입장에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그 교회의 성도라면, 그 문제는 자기 신앙과 직결됩니다.

 

나는 이 공동체에 계속 있어도 되는가?” “내 아이를 여기서 신앙생활하게 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이 생기겠죠. 그런데 외부 연주자나 세션, 방송 관계자, 행사 스태프라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물론 아무 상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서는 이유가 소속인 지 인지 예배인지에 따라 고민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쉽게 남의 결정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생계를 걸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양심 때문에 밤새 고민하고 있을 수 있습니 다.

 

2. 일인가, 예배인가?

질문하는 참새 그럼 이런 질문이 생기네요.

교회에서 하는 음악 사역은 일인가요, 예배인가요?” 이게 참 애매해요.

연주자는 사례비를 받고 갑니다. 그러면 일인가요?

그런데 장소는 예배당이고, 시간은 예배 시간이고, 부르는 노래는 찬양입니다. 그러면 예배 자인가요?

 

실제로 교회에서 연주하는 분들 중에는 나는 오늘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 을 거예요. 또 어떤 분들은 나는 예배자로 선다고 생각하겠죠. 이 차이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균형잡는 비둘기 맞습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구분입니다. “일로 간다는 말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어요. 현실적으로 교회 음악 사역자들도 생활인이니까요. 교회에서 반주하고, 세션으로 섬기고, 찬 양팀을 돕고, 사례비를 받는 일이 생계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 안에서는 그냥 알바라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배 공동체이고, 그 음악은 예배 안에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핵심은 이것 같아요.

 

나는 돈을 받으니까 대충 해도 된다가 아니라,

내가 돈을 받든 받지 않든, 예배의 시간 안에 들어왔다면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서야 한다.”

 

통찰하는 올빼미 저도 그렇게 봅니다. 물론 내 마음에 불편함이 있을 수 있어요.

그 교회의 정치적 성향이 나와 다를 수도 있고, 리더십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교 회 문화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 서기로 했다면, 적어도 예배 시간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를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고, 내가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중요한 게 있어요. 그 불편함이 너무 커서 내가 더 이상 정직하게 설 수 없다면, 그때는 물러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계속 남아 있으면서 속으로는 분노하고, 겉으로는 예배를 돕는 척하고, 마음속으로는 그 공동체를 판단하고 있다면 그건 건강하지 않은 것입니다.

 

3. 문제 있는 교회에서도 진정한 예배가 드릴 수 있을까?

질문하는 참새 여기서 또 어려운 질문이 나옵니다. “문제 있는 교회에서도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어떤 교회에 공적인 이슈가 있어요.

그런데 그 교회에 다니는 어떤 성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교회 예배가 너무 좋아요.”

설교가 은혜로워요.” “찬양이 좋아요.”

여기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럼 우리는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건 네가 속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래, 네가 은혜를 받았다면 됐다고 해야 할까요?

 

균형잡는 비둘기 바로 그 지점이 어렵습니다. 교회는 공적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리더십의 문제, 구조의 문제, 재정의 문제, 권위의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교회가 공의롭지 못하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신앙은 개인의 실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공동체 안에서 진짜 위로를 받았고, 말씀을 통해 살아났고, 예배 안에서 하 나님을 만났을 수 있어요. 그래서 둘 중 하나만 말하면 부족합니다.

네가 은혜 받았으니 아무 문제 없어라고 하면 공의를 놓치게 됩니다.

반대로 그 교회는 문제가 있으니 네 은혜도 가짜야라고 하면 한 사람의 신앙 여정을 너무 쉽게 짓밟게 됩니다.

 

통찰하는 올빼미 저는 여기서 은혜를 받았다는 것과 그 공동체가 건강하다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 다.

하나님은 부족한 곳에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문제 있는 교회 안에도 상처받은 영혼이 있고, 진심으로 기도하는 성도가 있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안에서도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이, 그 공동체의 모든 문제를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게 참 어렵죠. 우리는 은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질문하는 참새 그러니까 은혜가 있다문제가 없다는 같은 말이 아니네요.

 

통찰하는 올빼미 그렇죠. 은혜가 있다고 해서 구조적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예배와 눈물이 가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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