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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제적 시점 #9] 한국 축구는 왜 종이호랑이가 되었나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창제적 시점 #9] 한국 축구는 왜 종이호랑이가 되었나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창제 | 입력 : 2026/06/3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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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도전이 아쉽게 끝났다. 12패로 A3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은 와일드카드로 32강 진출을 노렸지만, 모든 경우의 수가 어긋나면서 32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 후폭풍으로 인해 홍명보 감독은 감독직을 사퇴하였고, 별도의 해단식도 하지 못하고 팀은 붕괴하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 결과이다. 한국 축구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왜 종이호랑이가 되었나? 월드컵 시작 전에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한 황금세대라고 불렸던 이번 국가대표팀이 어떻게 이런 졸전을 펼치게 된 걸까? 과연 한국 축구는 종이호랑이가 아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부활할 수 있을까?

 

▲ 북중미 월드컵 남자 국가대표팀 단체사진. 대한축구협회 갈무리

축구전문가들은 한국 축구가 종이호랑이가 된 이유로 다양한 이유를 언급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러 이유 중에서 단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실패한 원인은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기는 경기가 아니고, 단지 지지 않는 경기를 지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홍명보 감독이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였다는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이기는 경기는 경기장에서 다른 옵션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골을 넣어서 이기는 것만을 지향한다. 그러나 지지 않는 경기는 공격적인 선택보다는 수비적인 선택을 하면서 대량실점으로 패배하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 다소 의아한 것은 이번에 한국 축구가 A조에서 만난 체코,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브라질, 아르헨티나처럼 축구 강대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축구는 이들을 상대로 수비적이고 소극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경기를 주도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축구 국가대표팀은 운동장에서 방어적이었다. 그것은 결국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귀결되었다.

 

축구팀은 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축구뿐 아니라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그저 악의 세력에 지지 않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악의 세력과 맞서 넉넉히 이겨야 한다. 성경은 줄곧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악의 세력과 비겨라가 아니라 이겨라이렇게 명령한다. 그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이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핵심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것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긴 승리입니다.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 말고 누구이겠습니까?” (요한일서 154-5, 새한글성경)

 

구약에서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역대상 18장에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라는 구절이 6절과 13절에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이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임재하시고, 다윗이 언제나 승리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그저 패배하지 않기 위해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라. 다윗처럼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담을 뛰어넘기를 원하신다.

 

한국 축구가 종이호랑이가 아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부활하고자 한다면, 승리의 함성에 목말라야 한다. 어설프게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게 아니라, 온 힘 다해 지금 경기에 승리해야 한다. 지금 경기에서 이겨야 다음 경기를 뛸 수 있는 법이다. 7월부터 여름 사역을 앞둔 한국 교회 역시 유다의 사자이신 예수를 본받아 신앙의 야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는 말처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과 전진할 때 한국 교회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넉넉히 이기게 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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