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제적 시점 #7] 2세기 기독교와 한국교회가 무슨 상관인가?마이클 J. 크루거, 송동민 역, 『기로에 선 기독교』, 너머서, 2026.최근까지도 기독교 출판계에 1세기 기독교와 관련된 책들이 대거 출판되었다. 개인적으로 1세기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읽고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내용이 동어반복처럼 느껴져 굳이 새로운 책을 읽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머서에서 지난 6월 초에 출판된 마이클 J. 크루거의 『기로에 선 기독교』를 처음 읽을 때도 사실 큰 기대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기로에 선 기독교』를 읽으며 나의 어설픈 선입견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책은 치밀한 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2세기 기독교에 관한 신선한 주장을 하였다. 그것은 2세기 기독교가 1세기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불확실성 속에 놓였고, 그 상황에서 그들이 최선의 경로를 찾았기에 기독교가 세계 최대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 이천년의 세계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최대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건 당연한 게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기로에 선 기독교』라는 책의 제목에서 주목해서 살펴볼 단어는 바로 ‘기로’이다. 기로(岐路)는 큰길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작은 길들을 뜻한다. 이 책의 영어 원제가 ‘Christianity at the Crossroads’였기에 기로는 ‘Crossroads’를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Crossroads’는 기본적으로 두 개 이상의 길이 서로 가로질러 만나는 지점을 뜻하며 문학적으로는 중대한 결정의 순간을 뜻한다. 이 책을 읽으며 교차로에 선 2세기 기독교의 앞에는 4가지 길이 놓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길은 2세기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아있는 길이었다. 이는 ‘안주’의 길이다. 모두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대부분 유대인이었기에 1세기 기독교는 유대교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였다. 그러나 2세기 기독교는 민족 종교인 유대교의 한 분파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민족을 위한 세계 종교의 길을 지향했다. 두 번째 길은 2세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 전통을 따르는 길이었다. 이는 ‘순응’의 길이다. 소수 종교였던 2세기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황제숭배와 종교 전통을 거부했다. 이런 거부 때문에 2세기 기독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지만, 역으로 그들의 독특한 신앙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세 번째 길은 2세기 기독교가 에비온파와 마르키온파와 같은 이단에 빠지는 길이었다. 이는 ‘변질’의 길이다. 오리게네스의 말처럼 모든 이단자는 처음에 참 신자였지만, 이후 그들은 그 신앙의 규칙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2세기 기독교가 에비온파와 마르키온파와 같은 이단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휩쓸렸다면 2세기 기독교는 외부의 박해로 인해 무너지기 전에 내부의 교리적 혼란으로 인해 먼저 무너졌을 것이다.
놀랍게도 2세기 기독교는 안주의 길과 순응의 길과 변질의 길이 아닌 ‘도약’의 길을 선택했다. 유대교로부터의 도약, 로마제국의 종교 전통으로부터의 도약, 이단으로부터의 도약을 선택하여 2세기 기독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였다. 『기로에 선 기독교』에 따르면 이 도약의 발판은 다름 아닌 문서선교였다. 2세기 기독교는 적극적인 문서선교를 통해 안주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고, 변질되지 않았다. 즉 2세기 기독교는 문서선교를 지향했고, 문서선교는 2세기 기독교를 지탱하였다.
“이런 공격들에 대한 변증가들의 응답은 2세기 기독교 문헌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더 이상 신자들의 공동체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쓸 수 없었다. 이제는 믿지 않는 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써야 했다. 그 결과, 이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바를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교도들의 세계에 지적인 다리를 놓는 방식으로 기독교의 진리들을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비록 2세기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오랜 세월 후에 기독교는 마침내 그 적대적인 로마 세계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140쪽)
저자는 『기로에 선 기독교』에서 기독교가 먼 훗날 로마제국에서 공인되고 세계 최대 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문서선교가 있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 한국교회 앞에도 2세기 기독교가 마주한 안주의 길과 순응의 길과 변질의 길이 그대로 놓여있기 때문이다. 혹시 ‘2세기 기독교와 한국교회가 무슨 상관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기로에 선 기독교』를 읽기를 추천한다. 기로에 선 2세기 기독교가 기로에 선 21세기 한국교회를 충분히 도울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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